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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국내 퇴직연금 시장도 인공지능(AI)과 만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단순히 금리에 맞춘 안정적 운용에서 벗어나 로보어드바이저(RA)가 투자자의 성향과 시장 흐름을 분석해 자동으로 자산을 굴리는 방식이 확산하면서 수익률 또한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이후 은행 역시 속속 경쟁에 뛰어들며 판도 변화가 감지되는 상황이다.

RA는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투자자의 나이와 성향, 은퇴 시점 등을 고려해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짜고 자산을 운용한다. 단순히 투자 비중을 추천하는 대출이자율계산법 자문형과 매매까지 대신해주는 일임형으로 나뉜다. 특히 올해부터 정부가 개인형 퇴직연금(IRP)에도 일임형을 허용하면서 시장은 한층 빠르게 커지는 추세다.
22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올해 상반기 기준 445조 6000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여전히 약 80%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어 ‘저수익 구조’에서 금리인하 영향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입자의 수익률 제고 차원에서 도입된 실물이전 제도 이후 증권사로는 1조 3055억 원의 자금(DC·IRP)이 순유입된 반면 은행권에서는 1조 1847억 원이 빠져나갔다. 증권사 쏠림이 가속화되자 은행들도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하나은행이 업계 최초로 RA 전문 기업 파운트와 손잡고 첫발을 뗐고 NH농협은행(AI콴텍)과 KB국민은행( 신차 디셈버앤컴퍼니)도 연이어 시장에 합류했다. 신한·우리은행 역시 RA 기업들과 협력해 상품을 구성 중이다. 사실상 주요 은행 모두가 AI 퇴직연금 서비스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증권 업계는 이미 2022년부터 미래에셋·삼성·NH·한국투자증권 등이 혁신금융 지정을 받고 일임형 RA를 운영해왔다. 상장지수펀드(ETF) 기반 구조와 낮은 수수료 주택청약저축 금리 덕분에 은행보다 수익률 면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NH투자증권의 ‘DNA 퇴직연금 Floopin 적극투자형’은 최근 1년 수익률 27.02%를 기록했고 삼성증권의 ‘퇴직Robo ETF형’은 같은 기간 31.73%의 수익을 냈다. 코스콤에 따르면 국내 RA 자문·일임 운용 금액은 2023년 말 1186억 원에서 지난달 수습기간 급여 말 기준 4394억 원으로 불었다.
현재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모든 RA는 코스콤의 테스트베드를 거쳐 출시된다. 알고리즘의 투자자 성향 분석과 분산투자 구조, 해킹 방지 체계 등이 일정 기준에 부합해야만 시장에 나올 수 있는 구조다. 테스트베드를 통과했다고 해서 장기 수익률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어서 투자자가 상품 구조와 리스크를 이해하는 과정은 여전히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장기 투자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데이터 기반으로 최적화하는 AI 운용의 효과가 크다”며 “은행과 증권 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투자자들의 선택 폭도 더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민 기자 ymje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