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부문에서는 사료적, 학술적 가치가 돋보이는 책들이 우선 주목받았다. '대항해시대의 동남아시아' '소련 붕괴의 순간' '미국의 설계자 제임스 메디슨' '혁명의 봄'은 해외 석학의 두툼한 저작을 가독성 있게 번역해 박수를 받았다.
'자유'도 오랜 기간 독일어 번역을 해온 번역가의 공력이 빛나는 대작으로 올해의 책으로 꼽기에 손색없었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이를 알고 있다'는 일본어의 학술 용어를 매끄럽게 옮겨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끌었다.
'호라이즌'은 저자의 유려한 문장과 문체를 번역가가 섬세하게 살렸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과학자의 언어를 정확하면서도 대중서에 맞 바다이야기부활 게 옮긴 '인간 제국 쇠망사'는 전문 번역가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 작업이었다. '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다룬 국내 첫 책이란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가장 느린 정의'도 장애정의라는 개념을 소개하고자 새로 길을 낸 번역자들의 공이 빛나는 작업이었다.


바다이야기2
가장 느린 정의·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 지음·전혜은 외 1명 옮김·오월의봄 발행·512쪽·2만8,000원


▦가장 느린 정의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 지음·전혜은 외 1명 옮김·오월의 봄 발행
노동계급, 퀴어 릴게임바다이야기 , 유색인, 페미니스트, 장애인인 저자가 자신이 북미에서 일궈온 장애정의(Disability Justice) 운동을 소개한다. 장애정의 운동은 백인 중심적이고 단일 쟁점에만 초점을 맞추는 주류 장애단체를 비판하며 다중 쟁점 정치를 지향한다. 부서진 채로도 잘 살 수 있는, 무수한 돌봄망이 교차하는 세계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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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헬레나 코번 외 1명 지음·이준태 옮김·동녘 발행·348쪽·2만2,000원


▦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
헬레나 코번 외 1명 지음·이준태 옮김·동녘 발행
저자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전문가 5 바다이야기무료머니 명을 인터뷰해 하마스를 악마화하는 시도에 맞선다. 이스라엘이 벌이는 집단학살이 명백히 잘못됐지만 하마스의 테러 행위가 이를 자초했다는 정당화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한다. '저항'의 최후 수단을 택한 이들을 탓하기 앞서, '점령'이라는 사태를 먼저 짚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대항해시대의 동남아시아·앤서니 리드 지음·박소현 옮김·글항아리 발행·976쪽·5만8,000원


▦대항해시대의 동남아시아
앤서니 리드 지음·박소현 옮김·글항아리 발행
파편화된 동남아시아 역사의 '전체사' 쓰기를 시도한 역작. 저자는 '대항해시대'라는 용어가 서양사를 중심에 놓고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간주한다면서 이 대신 동등한 위치에서 교류했던 '교역의 시대'라는 단어 쓰기를 제안한다. 후쿠오카아시아문화상을 받은 학술서로, 발간된 지 40년이 지났지만 명성이 여전하다.



미국의 설계자 제임스 매디슨 전3권·노아 펠드먼 지음·오현아 옮김·소요서가 발행·1,444쪽·8만7,000원


▦미국의 설계자 제임스 매디슨
노아 펠드먼 지음·오현아 옮김·소요서가 발행
미국 헌법과 공화정을 설계한 제임스 매디슨의 전기다. 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인 저자가 편지와 논설 등 방대한 자료를 인용해 매디슨의 삶과 사상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미국 헌법에 담긴 철학, 현실 정치의 작동 방식, 미국이 유럽 강대국 틈새에서 생존을 모색한 방법이 3권에 걸쳐 흥미롭게 펼쳐진다.



소련 붕괴의 순간·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최파일 옮김·위즈덤하우스 발행·752쪽·4만2,000원


▦소련 붕괴의 순간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최파일 옮김·위즈덤하우스 발행
러시아 태생의 런던정경대 교수가 30년간 조사한 사료를 바탕으로 소련의 붕괴 과정을 분석했다. '소련의 붕괴는 불가피했다'는 지배적인 서사에서 벗어나,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붕괴를 재구성한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현재 러시아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인간 제국 쇠망사·헨리 지 지음·조은영 옮김·까치 발행·320쪽·1만9,800원


▦인간 제국 쇠망사
헨리 지 지음·조은영 옮김·까치 발행
영국 고생물학자인 저자가 생물 진화의 역사 속 현생 인류의 흥망성쇠를 분석하고 미래를 내다본다. 정점에 오른 생물은 멸종을 피할 수 없고 인간도 예외는 아니라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다만 인류가 "대자연이 휘두르는 멸종의 낫질"을 늦추고 필멸의 운명을 면할 선택지가 남아 있다고 희망의 실마리를 남긴다.



자유: 1954-2021년을 회상하다·앙겔라 메르켈 외 1명 지음·박종대 옮김·한길사 발행·768쪽·3만8,000원


▦자유
앙겔라 메르켈 외 지음·박종대 옮김·한길사 발행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의 회고록이다. 메르켈이 동독에서 살아온 35년과 통일 독일에서 살아온 35년의 삶을 되돌아본다. 동독 정권에서 탄압받던 목사의 딸로 자라난 물리학자가 어떻게 16년간 장기 집권한 여성 정치인이자 자유세계를 이끄는 막강한 정치인이 될 수 있었는지, 그 여정을 따라간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오가와 사야카 지음·지비원 옮김·갈라파고스 발행·296쪽·1만8,500원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오가와 사야카 지음·지비원 옮김·갈라파고스 발행
일본 인류학자인 저자가 홍콩에 위치한 청킹맨션에 머물며 이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탄자니아인 네트워크를 취재한 논픽션이다. 누구도 믿지 않는 '불신'이 기본값인 세계에서 서로를 가볍게 돕는 '겸사겸사'의 느슨한 연대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새로운 공존의 모델을 제시한다. 일본에서 인류학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혁명의 봄 전2권·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이재만 옮김·책과함께 발행·1,348쪽·6만5,000원


▦혁명의 봄
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이재만 옮김·책과함께 발행
역사학자인 저자가 1848년 2월 파리에서 시작돼 단숨에 유럽 전역으로 번진 혁명의 불길을 쫓는다. 각국에서 외따로 발생한 일국적 현상이 아닌 혁명가 네트워크로 이어진 국제적 현상, 바꿔 말해 단수의 '혁명' 아닌 복수의 '혁명들'이란 관점에서 저자는 '실패한 혁명'이란 오명을 쓴 1848년 혁명을 재조명한다.



호라이즌·배리 로페즈 지음·정지인 옮김·북하우스 발행·928쪽·3만5,000원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정지인 옮김·북하우스 발행
1986년 전미 도서상을 수상한 저자가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저서. 한평생 남극과 북극, 갈라파고스, 아프리카 등 70여 개국에 정착했다 떠나기를 반복했던 저자가 자신의 여행 경험을 집대성했다. 지구 곳곳의 풍경과 사람, 과거와 현재, 장소와 사유를 탁월하게 엮은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기자 admin@119sh.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