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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키넷의 미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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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장인숙(오른쪽) 방송통신대 초대 총장이 황인성 총리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자료사진
지금처럼 행정체계가 세분화되기 이전이었던 당시 문교부는 교육뿐 아니라 문화와 체육까지 통합 주관하던 부처였다. 그 덕분에 큰아버지는 교육 행정을 넘어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설립의 토대를 마련하고, 문교부 차관직 퇴임 후에도 서울올림픽 자문 역할을 맡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의 지평을 넓히셨다.
특히 큰아버지는 한국 저작권법의 선구자였다. 해방과 전쟁 후 대한민국의 급조된 시스템 전반에서 미비할 수밖에 없었던 저작권법을 연 바다신게임 구하며 한국형 체계화를 추진하셨다. 이후 저작권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으며 처음으로 개정된 법이 현실에 안착하도록 법학계와 사회를 독려하는 데 헌신하셨다.
1980년대까지도 불법 복제물이 당연시되던 세운상가와 이후 용산전자상가의 풍경은 저작권 인식이 전무했던 시대의 초상이었다. 그로부터 오늘날 지식재산권이 사회 전반의 상식으로 정착되기까지 바다이야기온라인 , 수많은 오해와 무관심에 맞서며 제도의 기틀을 세운 과정은 실로 지난한 여정이었다. 이제는 우리 창작물들이 정당한 권리를 보호받으며 세계로 뻗어 나가는 현실을 마주할 때, 큰아버지의 선구적인 노력이 한국 사회에 가져온 변화는 실로 자명하고도 거대하다. 큰아버지는 교육 행정과 저작권법 분야의 업적을 늘 자랑스러워 하셨다. 단과대였던 방송통신대학이 종합대학교 황금성오락실 로 승격될 때 흐뭇해하시던 모습이 여전하다.
하나 재미있는 일화는, 국민학생이었던 내가 세운상가에서 복제해 온 프로그램을 큰아버지의 컴퓨터에 설치해 드렸던 적이 있었다. 평생 컴퓨터와 그리 친하지 않으셨던 당신은, 수년이 흘러서야 그것이 불법 복제물임을 알게 되셨다. “허, 내가 저작권법을 만든 사람인데 내가 그걸 어기게 되다니…” 하시며 릴게임무료 나를 보고 껄껄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법 집행조차 모호했던 시대의 무지에서 비롯된 일이었으나, 아마도 당신은 ‘여전히 갈 길이 멀구나’ 하는 깊은 탄식을 속으로 삼키셨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송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우리 가족은 늘 큰아버지 댁 근거리에 살았고 어린 나는 수시로 혼자 걸어서 왕래하곤 했다. 자녀가 없으셨던 바다신릴게임 큰아버지 내외분께 조카들을 자주 보여드리고자 했던 아버지의 배려였다. 강북에서 분당신도시로 이사할 때도 두 집안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뒤를 이었다. 은퇴 후에도 시계추처럼 정확한 일과로 강연과 칼럼 집필, 유화를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셨다.
어린 시절부터 내게 큰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분이었다. 일본에서 보낸 유년기 시절 차별에 맞서 유도를 배웠고, “남자는 필요하면 주먹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던 기개 있는 분이셨다. 정제된 언어와 절제된 행동으로 그 강함을 증명하셨던 분. 그런 강인한 분이 내가 이민 길에 오르며 마지막 인사를 드릴 때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리셨다. 조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을 아끼셨던 분이었는데, 연세를 드시며 이별에 대한 내성이 약해지셨던 것일까. 아니면 이것이 생전의 마지막 만남임을 직감하셨던 것일까.
내가 타국에서 자리를 잡는 동안 긴 세월이 흘렀고 다시 뵙게 된 병상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눈을 감고 계셨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큰아버지는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당신의 보살핌을 받았던 우리 가족 모두는 그 고마움을 기억하며, 생의 마지막 병고의 시간까지 성심껏 그분을 보필했다.
팬데믹의 긴 터널 속에서 심신이 소진되어 가던 큰아버지는 이제 한 줌의 재로 돌아가셨다. 삶의 무게가 어떠했든지 누구에게나 인생의 마침표는 똑같이 오는 것 같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하며 대한민국 교육과 문화의 초석을 다져놓으신 거인. 부디 그곳에서는 무거운 짐 내려놓고 편히 영면하시길 빈다.
조카 장재철
‘그립습니다 · 사랑합니다 · 자랑합니다 · 고맙습니다 · 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이메일 : phs2000@munhwa.com△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QR코드 : 라이프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전화 : 02-3701-5261▨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지금처럼 행정체계가 세분화되기 이전이었던 당시 문교부는 교육뿐 아니라 문화와 체육까지 통합 주관하던 부처였다. 그 덕분에 큰아버지는 교육 행정을 넘어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설립의 토대를 마련하고, 문교부 차관직 퇴임 후에도 서울올림픽 자문 역할을 맡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의 지평을 넓히셨다.
특히 큰아버지는 한국 저작권법의 선구자였다. 해방과 전쟁 후 대한민국의 급조된 시스템 전반에서 미비할 수밖에 없었던 저작권법을 연 바다신게임 구하며 한국형 체계화를 추진하셨다. 이후 저작권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으며 처음으로 개정된 법이 현실에 안착하도록 법학계와 사회를 독려하는 데 헌신하셨다.
1980년대까지도 불법 복제물이 당연시되던 세운상가와 이후 용산전자상가의 풍경은 저작권 인식이 전무했던 시대의 초상이었다. 그로부터 오늘날 지식재산권이 사회 전반의 상식으로 정착되기까지 바다이야기온라인 , 수많은 오해와 무관심에 맞서며 제도의 기틀을 세운 과정은 실로 지난한 여정이었다. 이제는 우리 창작물들이 정당한 권리를 보호받으며 세계로 뻗어 나가는 현실을 마주할 때, 큰아버지의 선구적인 노력이 한국 사회에 가져온 변화는 실로 자명하고도 거대하다. 큰아버지는 교육 행정과 저작권법 분야의 업적을 늘 자랑스러워 하셨다. 단과대였던 방송통신대학이 종합대학교 황금성오락실 로 승격될 때 흐뭇해하시던 모습이 여전하다.
하나 재미있는 일화는, 국민학생이었던 내가 세운상가에서 복제해 온 프로그램을 큰아버지의 컴퓨터에 설치해 드렸던 적이 있었다. 평생 컴퓨터와 그리 친하지 않으셨던 당신은, 수년이 흘러서야 그것이 불법 복제물임을 알게 되셨다. “허, 내가 저작권법을 만든 사람인데 내가 그걸 어기게 되다니…” 하시며 릴게임무료 나를 보고 껄껄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법 집행조차 모호했던 시대의 무지에서 비롯된 일이었으나, 아마도 당신은 ‘여전히 갈 길이 멀구나’ 하는 깊은 탄식을 속으로 삼키셨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송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우리 가족은 늘 큰아버지 댁 근거리에 살았고 어린 나는 수시로 혼자 걸어서 왕래하곤 했다. 자녀가 없으셨던 바다신릴게임 큰아버지 내외분께 조카들을 자주 보여드리고자 했던 아버지의 배려였다. 강북에서 분당신도시로 이사할 때도 두 집안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뒤를 이었다. 은퇴 후에도 시계추처럼 정확한 일과로 강연과 칼럼 집필, 유화를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셨다.
어린 시절부터 내게 큰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분이었다. 일본에서 보낸 유년기 시절 차별에 맞서 유도를 배웠고, “남자는 필요하면 주먹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던 기개 있는 분이셨다. 정제된 언어와 절제된 행동으로 그 강함을 증명하셨던 분. 그런 강인한 분이 내가 이민 길에 오르며 마지막 인사를 드릴 때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리셨다. 조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을 아끼셨던 분이었는데, 연세를 드시며 이별에 대한 내성이 약해지셨던 것일까. 아니면 이것이 생전의 마지막 만남임을 직감하셨던 것일까.
내가 타국에서 자리를 잡는 동안 긴 세월이 흘렀고 다시 뵙게 된 병상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눈을 감고 계셨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큰아버지는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당신의 보살핌을 받았던 우리 가족 모두는 그 고마움을 기억하며, 생의 마지막 병고의 시간까지 성심껏 그분을 보필했다.
팬데믹의 긴 터널 속에서 심신이 소진되어 가던 큰아버지는 이제 한 줌의 재로 돌아가셨다. 삶의 무게가 어떠했든지 누구에게나 인생의 마침표는 똑같이 오는 것 같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하며 대한민국 교육과 문화의 초석을 다져놓으신 거인. 부디 그곳에서는 무거운 짐 내려놓고 편히 영면하시길 빈다.
조카 장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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